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보태 국세청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파면된 국세공무원 얘기가 급기야 정치권으로 옮아갔다.
결론적으로 국세청의 조치는 부당하다. 필자는 지난 2001년 2월 당시 김대중 정부가 벌이고 있던 언론사 세무조사가 정치적 목적이 매우 컸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정치적 목적의 세무조사와 관련한 국세청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규정을 법에 명시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내부고발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을, 그것도 내부통신망에 올린 수준인데, 파면이라니 가당찮다.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일반적인 조사대상 선정기준을 적용하지 않았고, 통상의 세무조사와는 달리 사전 통지도 없이, 관할인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닌 기획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서 장기간에 걸쳐 많은 인력을 투입해 진행됐다. 그래서 "한 전 국세청장이 새 정부에서 자리를 지키려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주도, 자신을 임명한 전직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했다"는 세간의 '정치적 세무조사' 의혹이 다수 납세자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정치인이 아닌 '납세자의 눈'으로 보고자 한다. 오죽하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자신의 평생 동지이자, 전직 대통령이었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골육상쟁(骨肉相爭)'의 판으로 끌어들였을까. 여러 의미의 '죽음'을 예고한 세무조사, 가혹한 형사처벌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매출 3000억 원의 회사에서 242억 원에 이르는 세금탈루에 따른 엄청난 규모의 세금 추징과 벌금, 형사처벌(조세포탈범) 등을 목전에 둔 기업인의 공포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세무당국이 특정 의도를 갖고 세무조사를 벌이면 한 개인을 완전한 파산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또 무릇 국가의 가장 강력한 힘은 형벌권, 그 다음이 조세부과권이다. 그런 점에서, 서구의 민주주의는 국가로부터 '신체의 자유(죄형법정주의)'와 '재산권 보호(조세법률주의)'을 쟁취하기 위해 흘린 피(血)를 자양분으로 삼아 영글어진 것이다.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때도 납세자의 죽음이 있었다.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의 부인인 고(故)안경희씨다. 고인은 친척과 친구에 대한 '먼지털기'식 조사와, 혐의사실을 기정사실화 해서 보도되는 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투신자살했다.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론사 세무조사가 한창이던 2001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 "정부와 언론이 한 판 붙을 수 있다"는 말로 언론사 세무조사 지지입장을 밝혔다.
두 분의 죽음 모두가 세무조사와 밀접하다. 더욱이 시간대를 달리하면서 입장이 상반되는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지녔다. 해당 납세자의 죽음을 불렀던 '정치적 세무조사'를 옹호해야 했던 정치인이 대통령을 지냈고, 퇴임 후 '정치적 세무조사'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영면하게 된 것이 '아이러니'의 핵심이다. 민주주의 발전에 관한 한 많은 업적을 남긴 대통령이었지만, 이런 '정치적 세무조사'의 위험성을 사전 차단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국세청 세무조사를 견제할 장치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미국처럼 국세청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고위공직자의 세무조사에 대한 영향력을 금지하는 규정, 이를 어겼을 때 세무공무원의 신고의무, 의무 위반시 형사처벌규정 등을 세법에 명시해야 한다. 또 정치적 세무조사에 임한 세무공무원에 대한 형사처벌규정을 두고, 해당 과세처분은 무효로 해야 한다. 국세청 외부에 독립적인 '국세청감독위원회'를 둬야하며, 국민과 위원회의 요구가 있을 때 국세청은 정치적인 세무조사가 아님을 입증토록 해야 한다. '내부 고발자 보호' 조항은 필수다.
여야 정치인은 깨달아야 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견제할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바로 자신이 세무조사라는 무소불위의 칼에 맞아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적제거수단으로 세무조사가 악용되는 후진성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국세청 개혁은 국민에게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찾아주는 것이다.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세정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