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주식저축의 세금에 대한 공공연한 비밀
(2000년12월5일자 동아일보)
정부가 최근 실시키로 확정한 근로자 주식저축은 침체된 주식시장을 부양한다는 효과를 논외로 치면 조세형평 측면에서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는 정책이다.
근로소득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 비해 세금을 덜 내게 되는 까닭에 헌법에 보장된 조세평등주의에 정면위배되는 정책이란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4인 가족 기준 연봉이 2000만원인 월급쟁이 A는 한해 대략 22만여원을 근로소득세로 내야 한다. 연봉이 3300만원인 B는 약 151만여원을 낸다. 그러나 연봉 3300만원 월급쟁이가 한도껏(3000만원) 근로자주식저축에 가입할 경우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불입액의 5%인 150만원을 세액공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B의 세금은 1만원에 불과하다.
반면 세부담액이 22만여원인 A에게 여유자금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연히 가입은 어렵게 되고, 결국 A는 22여만원의 세금을, B는 1만원의 세금을 내는 기현상이 초래된다.
시야를 넓혀보자. 어쩌면 최대한의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근로소득계층은 실제 A도, B도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구조조정과 퇴출 등 최근 국내상황에서 우리 근로소득자들중 실제 여유자금을 근로자주식저축에 가입, 연간 150만원의 세금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계층은 누구인가. 최소한 연봉 5000만원 이상의 고소득근로자 정도가 돼야 알짜 세금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근로자주식저축제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세액공제에 따라 저소득근로자들보다 고소득근로자가 세금을 덜 내게 되는, 이른 바 `역진적'인 조세제도란 점이다, 조세란 공공경비를 국민들에게 강제적으로 배분케 하는 것으로, 납세의무자 사이엔 `부득불' 서로 세금을 떠넘기는 관계가 맺어진다.
이는 특정인이나 특정계층에게 면세 또는 감세해줄 경우 다른 납세자가 그에 따른 세금을 나눠 짊어진다는 의미로, 근로자주식저축 같이 고소득층의 세금만 줄여주는 역진적 세제는 결국 저소득층의 추가적인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얘기다, 법 논리로 접근하자면 `조세평등주의'의 문제다. 헌법상 조세평등주의가 요구하는 `담세능력에 따른 과세'는 `같은 소득에 대한 같은 과세(수평적 조세정의)'와 `소득이 많은 사람에 대한 더 많은 과세(수직적 조세정의)'를 의미한다, 하지만 근로자주식저축제도는 `수직적 조세정의'를 보기 좋게 내팽개 치고 있다.
세제당국은 연간소득에 상관없이 `누구나' 최고가입한도인 3000만원까지 불입할 수 있으며, 세금혜택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이상한 평등론'을 내세운다.
물론 최근의 '위기정국'을 자초한 정치권에 떠밀려 부랴부랴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제도란 점에서 세제당국의 고충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예를 들어 살펴본대로 결과적으로 고소득자가 저소득자보다 세금을 덜 내는 `기현상'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든 해명을 해줘야 옳지 않을까.
`남 세금 덜내는 것 배 아파하는 옹졸함'이라고 누군가 폄(貶)한다면 그야말로 세금을 모르는 사람이다.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고소득자가 덜낸 세금을 나머지 국민들이 머릿 수대로 나눠 내야 한다는 사실이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질 못한 까닭이다, 정부가 최근 법 통과절차를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일단 국회 소관 상임위만 통과되면 상품판매를 개시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다급한 실정인지 이해는 간다. 얼어붙은 직접금융시장을 하루빨리 활성화시켜야 한다는데 토를 달 사람도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증시부양' 등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조세평등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면서 추진한다면 문제가 크다.
더욱이 “중산층 서민층 재산형성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세일즈 모토'는 기업퇴출과 경기한파 등으로 거리에 나앉은 퇴출기업과 그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겐 정말 분통터지는 `사탕발림'이 될 수도 있다, 여야가 이번 근로자주식저축제도 시행에 한목소리를 낸다니 조만간 시행도 어렵잖을 듯하다.
다만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외국인투자유치의 신화를 한껏 자랑했던 우리 정부가 `소득분배상태를 악화시키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는 조세정책의 비밀'을 감추고 근로자주식저축제도를 통해 증시를 부양하려 한다니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부디 증시는 살리되, `조세평등주의'가 실종된 이 제도의 비밀이 영원히 백성들에게 알려지지 않은채 궁중(宮中)과 일부 부자들만 알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진 말기 바란다.
* 본 칼럼은 2000년12월5일자 동아일보 6면에 보도된 글의 전문입니다. 신문보도에선 지면관계상 뒷부분 일부가 삭제, 편집됐음을 알려드립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