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납세자주권"시대
(조선일보 2001.09.06)
지금 이 땅에선 한국 납세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이 자동차세의 위헌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키로 결정한 지 불과 보름 만에 전국에서 100만명 이상이 불복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주도한 자동차세 불복운동은 불합리한 자동차세금 제도를 개선하려는 뜻에서 시작된 일종의 조세저항 운동이다. 자동차 연식에 상관없이 배기량만 같으면 무조건 같은 금액의 세금을 부과하는 현행 자동차 세금제도가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며, 납세자연맹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 5월 말이었다.
그러나 이 불복운동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동참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 때문에 납세자연맹은 소송을 제기하기 전인 지난 2월 말부터 인터넷사이트(www.koreatax.org)를 개설해 범국민적인 홍보활동에 나섰다. 전국 18만여명의 회원들이 거리에서 불복운동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전단을 돌렸고 통·반장과 주부회를 찾아다니며 불복청구서 작성을 독려했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 6월, 상반기 자동차세 납부고지서가 발부되자 납세자들의 참여가 잇따랐다. 불복운동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것이다.
이번 자동차세 불복운동은 여러 가지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100만 납세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자동차세에 대해 위헌 판정을 내릴 경우 세금 고지서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이의신청 등 불복운동에 참여한 사람들만 구제(세금 환급)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번 운동은 불합리한 세금제도에 대해 지난 20여년간 누적돼온 납세자의 불만이 NGO(비정부기구) 운동을 통해 집단적으로 폭발한 것이다.
따라서 불복운동의 의미를 ‘반기분 자동차 세금을 돌려받기 위한 것’으로 격하해선 곤란하다. 이 운동은 그간 국가 재정의 주체이면서도 국가권력으로부터 조세 징수의 대상으로만 홀대받아왔던 납세자들이 스스로 현실에 맞서 나라살림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는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할 납세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백번 맞는 얘기이다. 하지만 교과서 어디에도 ‘납세자의 권리’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현행 세금제도가 납세자에게 ‘의무’만 강요할 뿐 ‘권리’는 보장해주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헌법상 조세평등주의란 소득과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 징세현장에서는 이 같은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 ‘직접세’보다 ‘간접세’ 위주로 이뤄진 세수체계와 턱없이 낮은 과표양성화 수준으로 인해 ‘세 부담의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불복운동은 정부가 잘못된 기준으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해온 데 대한 국민적인 ‘항의시위’이며, 불합리한 세금정책에 대한 시정요구다. 또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납세자의 권리를 담은 ‘권리장전’의 선포이기도 하다.
물론 납세 불복운동의 역기능을 우려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 운동이 세금 환급에만 급급할 경우 또 다른 집단민원을 야기하고 이로 인해 행정력을 낭비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은 일시적일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납세자 스스로가 ‘권리 찾기’에 나섬으로써 잘못된 조세제도와 나쁜 관행을 고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자동차세 불복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납세자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