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금 문제 납세자 도마에 올릴 때
조선일보 2004년 게재
세금에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 모두 합친 국민부담률이 소득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증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세금 이외에 납세자로부터 걷어 간 준조세 성격의 부담금 규모가 전년 대비 18.4% 늘어난 8조8000억원에 이른다는 보도다. 2004년 현재 부담금은 100개나 된다. 기업에 부과된 준조세는 제품가격에 전가, 부담은 결국 최종소비자 몫이다. 통신사업자가 내는 정보화촉진기금 역시 통신요금에 전가된다.
우리 납세자들은 50년 동안 갖가지 부담금에 대해 그저 ‘내야 하니까’ 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는 문예진흥기금 납입금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이 납입금 징수가 국민 재산권을 침해하고, 조세평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헌법상 예정되어 있지 않은 국가재정수입의 형식인 특별부담금은 최소화돼야 한다는 헌법이념에 따라 조세를 통한 일반예산으로 추진하여야 한다”며 “특별한 집단으로 볼 수 없는 문화시설 이용자에게 부담금 형태로 문예진흥기금 납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명시했다. 또 “우리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국가의 재정문제는 원칙적으로 조세에 의하여 충당돼야 하고, 부담금은 예외적으로 최소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예진흥기금은 지난 1973년부터 부과, 2002년 현재 여유자금만 5055억원이다. 우리는 결코 높지 않은 수준의 문화생활을 위해 꼬박 30년 동안 ‘위헌적’ 기금을 내온 셈이다.
준조세로 납부된 돈은 보통 기금형식으로 관리, 지출되고 있다. 목적과 필요성이 불분명한 기금은 국가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먼저 무절제한 재정규모의 팽창과 방만한 재정운용이 크게 우려된다. 200조원 대를 웃도는 기금 규모는 일반예산의 1.8배에 이른다. 지난해 정보통신부의 일반예산이 2800억원인데 반해 정보화촉진기금은 1조3117억원으로 무려 4배가 넘는다.
헌법원리상 조세국가에서 원칙적으로 재정사업은 세입예산으로 운용돼야 한다. 기금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편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금 규모가 예산보다 크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헌법차원의 조세국가원리에 위배된다.
저금리와 자산 감가로 생계비조차 불투명한 노인들에게 재정이 없어 국민연금을 못준다면서도, 기금은 28조3023억원이 남아 금융기관에 맡겨놨다고 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정보화촉진기금 중 무려 2117억원의 정보화촉진기금을 불법으로 전용, 사립대학을 세웠다.
다수 국민들은 이 기금 운용과정에서 업체에 편의를 제공하면서 주식을 싼 값에 사는 방식으로 사실상 뇌물을 받은 정보통신부 고위 공무원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예산감시의 사각지대 중 한 개가 드러난 것일 뿐”이며 “안 그런 게 있겠느냐”며 혀를 끌끌 찰 따름이다. 이를 단순히 ‘불신풍조’라고 일축하면서 ‘신뢰회복’을 주창할 수 있을까.
기금을 개혁하면 추가 국민부담 없이 복지재원을 확보, 생활보호대상자 지원 확대 등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감사원도 이런 맥락에서 건강증진기금 등 23개 기금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쉽게 기금개혁에 나설 정부가 아니다. 기금은 조세부담율 통계에서 빠지므로, 정부는 조세저항에 대한 걱정이 훨씬 덜한 기금을 선호하게 된다. 각종 명분의 부처별 목적사업을 계획한 뒤 기금 형태로 재원을 조달, 큰 간섭 없이 쓸 방도가 있는데 쉽게 포기할 정부가 있을까. 어느 멍청한 고양이가 스스로 자신의 목에 방울을 달겠는가. DJ 정권 때부터 스스로 기금을 축소(또는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물밑 으로는 담배 값 인상을 통해 2조원의 국민건강기금 조성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지 않았는가.
바야흐로 납세자가 나서서 각종 부담금의 정당성부터 조목조목 따져보면서 100가지 부담금과 57개 기금을 차례로 도마에 올릴 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