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장려세제(EITC) 과연 현실성 있나?
정부는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에게 현금을 보조해주는 근로장려세제(EITC) 도입을 2007년부터 추진하겠다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근로장려세제는 부부 합산 총소득이 1700만원(최저생계비의 1.2배)미만인 저소득층 근로자에게 일정 소득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사회보장제도다. 매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근로장려세액공제(시행초기는 최고 80만원)에서 납부할 세금을 뺀 금액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제도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선진 6개국에서 시행중인 이 제도는 ‘차상위 계층의 근로유인을 높이고, 빈부격차를 완화하자’는 좋은 입법취지에도 불구,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안 맞는 제도다.
우선 선진국이 이 제도를 도입한 배경에는 낮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보다 복지에 의존하는 부작용을 방지하는 측면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 근로빈곤층은 낮은 근로의욕 탓이 아니라, 일자리 부족과 중간층 일자리 감소 등 노동수요 양극화 현상 탓에 가난하다. 근로의욕을 화두로 삼는 노동공급 측면 대책은 그래서 문제가 있다.
제도 도입으로 근로의욕을 높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의 경우 편모가정 등 일부에서 EITC 도입에 따른 노동공급이 증가 했다지만, 배우자가 있는 기혼여성의 근로의욕은 되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한국의 편모 가정은 미국(15%)보다 훨씬 적은 6.4%다.
둘째,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차상위 계층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는 행정인프라, 소득파악이 전제돼야 한다. 전체근로자 1489만 명중 415만 명(28%)인 임시일용직노동자의 소득파악이 안되고 있다. 자영업자 499만명중 436만명의 소득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나 기장사업자 인원은 114만명에 불과하고, 자영자 소득파악율은 50%내외로 아직도 극히 낮은 수준이다. 농어민은 소득파악이 거의 안 되고 있다. 이 제도의 지원대상인 차상위 계층 대부분이 소득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계층이다.
지난 1999년, 지역가입자까지 국민연금 의무가입대상을 확대했을 당시 정부는 “일단 시행하면 조만간 소득파악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다. 소득파악율은 그 나라 재화?서비스의 유통구조, 부패수준, 문화 등 복합적인 문제다. 국세청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금세 개선되는 게 아니다.
올해부터 1인 이상을 고용한 자영업자는 직원임금 명세를, 일반기업은 일용직 근로자의 임금명세를 각각 제출토록하고 있으나, 임금명세를 제출하면 4대보험료가 인건비의 약8.1%에 이르고, 저임금 종업원의 실수령 급여도 7% 인하된다. 2% 가산세보다 자영업자의 원가부담이 커서 이 제도의 실효성이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득파악에 대한 뚜렷한 성과 없이 EITC를 시행하는 것은 ‘당대 정치인들의 인기몰이용 실험에 온 국민이 감내해야 할 또 한번의 정책 실패’에 다름 아니다.
셋째, 현행 소득파악율을 감안할 때 소득이 파악된 근로소득자부터 먼저 시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자신보다 안정적인 직장과 많은 급여를 받는 사람은 세금을 환급받는데, 단지 소득파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세금 환급을 못 받는 임시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상상해 보라. 게다가 그가 환급세금의 일부를 부담하는 비적용 차상위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까지 깨닫게 된다면…. 제도 적용자와 비적용자간 판단기준이 합리적이지 못할 때, 비적용자의 박탈감은 쉽게 ‘분노’로 증폭될 것이다.
넷째, 정부는 시행초기에는 1500억원, 장기적으로는 2조5000억원이면 된다고 재정추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30년 동안 신청금액이 30배, 적용인원도 3.4배나 나 늘었다. 일단 시행이 되면, 저소득 자영자의 반발과 표를 의식한 우리 정치인의 속성상 적용범위와 금액이 급히 늘 수밖에 없다. 중장기적 재정부담이 우려되고, 국민부담은 늘 것이다. 따라서 한번 시행되면 멈추기 힘든 복지정책을 처음 도입하는 데는 지나칠 정도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재경부 세제실장은 최근 EITC 재원 마련을 위해 국민에 별도의 부담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경제성장에 따라 매년 근로소득세수 자연증가분이 1조원 내외에 이르고 있어 이를 EITC 지원금으로 활용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부담을 주는 게 아니라 한쪽의 부담을 다른 쪽으로 떠넘기는 것이다. 더욱이 경제성장이 정부 관료의 낙관처럼 이뤄질 지도 의문이다. 새 제도가 시행되면 멈추기 어렵고, 경제성장이 여의치 않으면 국민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경제성장이 낙관대로 이뤄진다면, 늘어난 세수로 복지정책 재원으로 쓰면 된다. 미래의 과실을 무작정 믿고 감당할 수 없는 제도의 첫 단추를 끼울 수는 없다.
다섯째, 기존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최저생계비 보장제도와의 관계설정에 문제가 있다.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생계비 보장제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새 제도가 시행되면 최저생계비 보장제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여섯째, 근로소득자 특히 절대적인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연봉 1100만원인 근로자가 근로장려보조금 80만원을 받으면 근로자의 실제로 받는 시장임금은 1180만원이 된다. 저임금 사업장의 경우 80만원의 보조금을 근로자가 받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가 받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생계임금을 지급해 왔던 사업주로서는 생산성이 향상되더라도 더 이상 고용한 저임노동자의 정상임금을 지급하려는 유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부정수급 문제다. 미국의 경우에도 부정수급율이 30%에 이른다고 한다. 터무니없이 낮은 소득파악율, 일정한 합의점에 수렴되지 않은 현행 납세의식 등을 감안할 때 우리의 부정수급율은 그 갑절도 넘을 수도 있다. 제도시행에 수반되는 행정비용이 엄청난 규모가 될 것임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뭔가 참신한 복지정책을 고민하는 것은 이해된다. 그러나 무릇 복지정책은 고유의 체질에 맞아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EITC가 도입되면 근로빈곤층 부조라는 정책목표 달성 대신, 엄청난 국민 세금 낭비만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실정에 맞지 않는 근로장려세제 보다는 근로빈곤층과 중소기업, 영세자영자 모두에 큰 짐으로 작용하는 국민연금·건강보험료 등 사대보험료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낫다. EITC 수혜대상 근로빈곤층에 대해서는 사대보험료를 면제하는 것이다. 4대보험료만 면제해줘도 근로빈곤층의 가처분소득은 7% 증가하고, 사업주는 8.1% 비용절감이 가능하여 일자리 창출 여건이 뚜렷이 좋아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