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심판원에 따르면 작년 심판청구 건수가 전년 대비 10.4% 증가한 5647건이며, 올해는 작년보다 20%나 더 늘었고 심판청구인용율(이의신청 수용비율)도 40.2%로 크게 올랐다.
형평에 어긋나고 억울한 세금 부과가 많다는 얘기다. 납세자들의 피해는 이의신청 때 세무대리인 비용에 머무를 리 없다. 지루한 불복기간이 의미하는 엄청난 시간에다 정신적 피해까지, 세금의 재산권 침해 및 개인 자유권 침해 소지는 더욱 커진다.
국세심판청구가 늘고 있는 이유는 우선 제도의 문제다. 복잡한 세법과 잦은 세법의 제․개정, 빠른 경제 환경 변화를 따라잡기 힘든 세법의 본질적 한계 등이 세제의 일반적 문제다. 정부가 조세를 부동산 투기억제 등 재정 외적인 정책수단으로 이용, 이런 문제는 매우 특수하고도 개별적인 문제를 낳는데, 그것이 납세자와의 다툼인 것이다.
세법 규정에 자주 등장하는 ‘부당한(또는 정당한) 사유’ 등 애매한 조항도 다툼을 예고한다. 부동산이나 주식의 상속․증여세 과세 때 적용하는 시가평가 방법은 공준으로 확정하기 매우 어려워, 임의기준이 불가피하다. 역시 다툼소지를 낳는다.
두 번째, 시대에 뒤떨어진 세무행정 문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목표나 인사고과 기준에는 아직도 ‘세금 징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세청의 우수 공무원은 으레 세금 많이 걷은 직원이다. 게다가 감사원도 국세청 감사 때 세금을 덜 걷은 부분에 주로 집중하는 반면, 납세자 권익을 침해한 과잉징수에는 수동적이다. 조세를 다루는 관료사회에 ‘ 법대로 세금 물릴 뿐, 납세자 애로사항은 모르쇠’라는 사고가 만연 돼 있는 셈이다.
이밖에도 부당한 세금에 대해 적극 이의를 제기하는 납세자권리 의식 향상이 국세심판청구 증가 추세에 한몫을 했다. 그럼 납세자와 국가 모두에게 적잖은 비용을 추가하는 심판청구를 최소화 하는 길은 무엇인가.
먼저 세제를 단순 명료화해야 한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제도는 반드시 다툼을 낳기 때문이다. 또 미국처럼 납세자가 세금고지에 동의를 안하면 법원 판결 때까지 고지를 유예하고 납세자보호담당관제도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등 ‘사전적 구제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감사원은 징세기관 감사 때 세금을 과다부과한 부분에도 똑같이 신경을 써야 한다. 징세기관도 세무조사관의 세금추징실적만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
다음으로, 잘못된 과세로 판명됐을 때는 추징가산세와 똑같은 환급을 보장해야 한다. 현행은 이의제기 후 세금 취소로 환급받을 땐 연리 4.38%만 얹어 돌려받는다. 이를 ‘추징시 추가불이익’(과소신고가산세 20%, 미납부가산세 연 10.95%) 수준으로 대폭 올리고, 적용요건이 극히 까다로운 국가배상법도 합리적으로 고쳐 선량한 납세자에게 실질적인 손해배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차제에 국세청 심사청구제도를 없애고 국세․지방세를 망라하는 ‘조세심판원’을 총리실 산하에, 사법부에는 조세법원을 각각 설립하는 안도 본격 검토해 봐야 한다.
최근 재정학계는 ‘조세’에 대해 “납세자가 공동체유지를 비용을 자발적으로 내는 것”이란 의미를 더 크게 부여, ‘납세자의 동의’를 중요시하고 있다. ‘사전적 구제’는 ‘사후적인 구제’보다 비용이 훨씬 적음은 물론이고, ‘제 2의 세원(稅源)’인 ‘납세자의 동의’를 더욱 쉽게 확보할 수 있다.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김선택
(동아일보 20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