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용지부담금 환급, 잘못한 국가 국민이 일깨운 사례”
[인터뷰] 최재성 의원…학교용지부담금 환급특별법 국회통과에 앞장섰던 주역
임기말 대통령 거부권행사에 국회 소신 대처로 결실…국민중심 법?행정 일깨워
대의민주주의 진화방향 고민 중…“이해당사자와 함께 어려운 입법했을 때 쾌감”
“국민들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면 기존의 법 해석이나 질서로 안 되는 것도 뛰어넘는 특별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기존의 법해석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그래도 국회는 재의결했습니다. ‘학교용지부담금 환급 특별법’을 의회, 곧 국민의 승리로 보는 이유죠.”
지난 2월19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727호에서 만난 최재성 의원(민주당?남양주갑?3선)은 “환급특별법은 국가가 권위를 앞세워 헌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한편 입법과 행정 집행 과정에서 국민을 중심에 두게 한 값진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대통령의 거부권까지 뒤집으면서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학교용지부담금 환급특별법’ 국회통과(2008년 2월22일) 6주년을 맞아 납세자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최의원의 사무실을 찾아 환담했다. 이날 나눈 얘기를 정리해봤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이하 김회장)
6년이 지나 여쭙네요. 그 당시 학교용지부담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무슨 계기라도 있었는지요.
최재성 국회의원(이하 최의원)
현장을 좀 다니다보니 지역에 학교용지부담금 피해자도 있었고, 상임위가 교육위다보니 관심이 컸습니다. 처음 환급 특별법 대표발의를 이상민 의원께서 하셨죠. 저는 좀 늦게 합류했습니다. 2005년 상임위에서 얘기가 오갔지만 대부분 부정적이었죠. 그런데 제가 좀 어려운 법에 관심 많고, 도전과 성과도 많이 낸 편이라 더 흥미를 느끼게 됐습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2003년 10월1일 당시 사뭇 어설펐던 홈페이지에 학교용지부담금 불복코너를 오픈한지 15개월 5일 만인 2005년 3월5일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 했다. 다음 달 곧바로 법조인 출신 이상민 의원이 ‘학교용지부담금 환급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상정했다.
김회장
2005년 3월30일 위헌결정 소식에 사실 우리 연맹도 깜짝 놀랐죠. 환급 못 받으신 분들이 촉구해서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사실 기존 판례로는 불가능했죠. 저도 가능성이 있어서 운동을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억울해하니까 시민단체로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재의 위헌결정 이후 2007년 7월27일 날 국회 소관 상임위에서 ‘환급특별법’이 통과됐을 때 또 한 번 크게 놀랐어요. 당시 상황 좀 설명해주세요.
최의원
그때 제가 교육위 법안소위 위원장이었죠. 그래서 “두들겨야 된다(상임위 가결)”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교육부 관료들이 “안된다“면서 제게 막 매달리다시피 했죠. 법안소위에서 합의를 이끌어 냈으니 상임위는 그냥 두들겼어요. 지금도 그때 가결하던 사진을 귀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상임위 가결 뒤 온갖 군데에서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김회장
교육부 반대가 굉장했었죠?
최의원
장관이 “살려 달라”는 식으로 매달리기도 했고, “결국은 실패할 것”이라는 엄포성 회유도 있었죠. 행정부 사람들도 “(국회 최종 통과가) 안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내심 통과될까 두려워하는 표정들이 역력했죠. 그래서 자신감을 가졌죠. 뒷얘기가 좀 있어요.
한국정치에서 보기 드물게 여당과 정부가, 국회와 행정부가 맞선 사건이었다. 위헌적인 법률에 근거해 부담금을 징수한 국가가 환급을 요구하는 납세자들에게 6500억 원을 돌려줘야 할 상황에서 집권여당 의원 2명이 납세자들 편을 들고 나섰다. ‘제왕적’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집권여당 소속 국회의원이 국가가 아닌 납세자편을 드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최재성 의원은 그 쉽지 않은 일에 앞장까지 섰다.
김회장
2008년 1월18일 국회 본회의 통과 후 2월12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죠. 일반 국민들은 대통령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잘 모릅니다. 게다가 임기 말이었고,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자세히 검토하고 거부권을 행사한 것 같지도 않아 보였습니다만.
최의원
저는 그거 좀 이해를 하는 편이에요. 전례도 없고 법률적 해석으로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고, 국무위원들이야 ‘법적 안정성’ 등의 논리로 뭐 당연한 것이었죠. 행정 수반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상할 건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의회는 행정이 못하는 것도 해야 될 책무가 있기 때문에,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했지요. 대통령은 기존의 해석법으로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국회는 기존의 해석법이나 기존의 질서로는 안 되는 것을 국민들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면 그걸 뛰어넘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재의요구)해도 다시 국회에서 가결시키면 됩니다. 그래서 그때 의회가 이긴 겁니다.
김회장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 취임이 임박했던 2008년 2월12일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죠. 그리고 딱 열흘만인 2월22일 국회 본회의 재통과, 꽤 긴박했죠?
최의원
노대통령 임기 말이었기 때문에, 대통령 재의요구에도 여당을 포함한 국회가 제몫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임기 초기였다면 여당으로서 힘들었을 것입니다. 여야를 떠나 의원님들 이 소신 있게 할 수 있었고, 청와대도 국회재통과 다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당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최의원은 대선패배 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개칭한 막바지 여당의 원내대변인을 맡았다. 최의원은 며칠 뒤면 여야가 뒤바뀔 원내대표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놓고 협상 중인 자리에 배석했다. 패배한 여당이 사활을 걸고 이명박 정부에 적용될 ‘정부조직법’을 막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게 합의가 도출됐고 막 서명을 할 시점. 최의원은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학교용지부담금 환급 특별법’ 통과를 최종 서명의 조건으로 끼워 넣자고 밀어붙였다.
김회장
환급특별법안이 최종 국회통과를 앞두고 정권이 바뀌었었죠. 대통령직을 인수하는 한나라당도 법안 가결 결정이 쉽지 않았을 처지였을 텐데요.
최의원
그렇습니다. 재의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된 2월22일은 이명박 대통령께서 취임을 며칠 남겨둔 시기였고, 사실상 내각구성도 끝난 상황에서 대통령직 인수위 체제로 유지되는 시기였습니다. 인수위가 이거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이미 여당이 돼 버렸죠. 그러다보니 법적안정성, 행정부입장에서, 야당 때 별 말 없던 한나라당이 여당이 되고 나니 “이거 안 된다”면서 국회통과를 반대했습니다.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학교용지부담금 환급 특별법 재의안’을 여야합의로 다시 통과시키자는 새로운 조건이 당혹스럽고 난처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 재의결 안을 부결 처리하기로 이미 입장을 정한 터였기 때문이다. 화기애애했던 원내대표 (정부조직법 개정)협상은 결국 또 냉랭해졌다.
얼마 뒤 협상이 재개됐고, 결국 최의원의 뚝심이 결실을 봤다. 대한민국 역사 이래 최초로 국가가 위헌법률에 근거해 징수한 특별부담금을 납세자에게 돌려주자는 특별법이 국회에서 합의처리 되는 첫 순간이었다.
최의원
그때 제가 원내대변인이었는데 원내대표한테 정부조직법협상 때 저도 함께 나가겠다고 해 그렇게 했죠.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특별법은 죽어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정부조직법 개정에 합의키로 했죠. 그런데 마지막에 도장 찍을 때(합의안 서명) 제가 나서서 딱 덮었지요.
“대표님 이거 못 찍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이거 확실히 해야 됩니다”라고 협상 매듭을 막았죠. 그래서 그때 서명 직전에 중단됐어요. 학교용지부담금 환급특별법 합의처리를 서명의 조건으로 내세웠어요.
촉박한 상황에서 결국 합의문에 환급특별법 부대조항으로 넣고 서명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정부조직협상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김회장
아무튼 한편의 드라마 같군요. 3선 의원으로서 당시 학교용지부담금 환급특별법 국회통과에 대한 역사적 의의랄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최의원
한마디로 의회의 승리였죠. 집권여당이지만 행정과 의회는 엄연히 다른 것이거든요. 대통령 권한이 과도한 나라입니다. 미국대통령은 법률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에 비하면 권한이 적어요. 미국 국회는 예산편성권에 감사기능까지 갖고 있죠. 그래서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경우도 정부가 협상은 하지만 원래 협상권한은 의회의 것입니다. 의회가 행정부에 협상권을 빌려주는 겁니다.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합니다. 여당이 대통령 의중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죠. 여당 국회의원들이 거수기, 통법부, 심부름꾼 얘기를 들을 수밖에요.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거부권행사까지 한 걸 여당의원들이 나서서 국회 재통과 시켰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입니다. 삼권분립 국가에서 행정과 의회가 다퉈 의회가 이겼다는 것은 국민이 이긴 겁니다.
국가가 국가의 권위를 앞세워서 헌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국가가 책임져야 된다는 아주 큰 전례가 됐습니다. 앞으로 입법이라든가 행정 집행 과정에서 법과 국민을 중심으로 사고를 하게 되는, 행정이 더 꼼꼼해지고 국민들을 더 의식하게 되는 아주 큰 계기였죠.
지금 제 소속 상임위가 기획재정위원회입니다. 경제정책, 조세정책 과정에서 법률적 충돌이 있는지, 국민들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는지 늘 따져요. 학교용지부담금 환급이 이런 공직업무 풍토 변화에도 큰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김회장
다수의 민의가 반영이 어려운 한국사회에서 의회와 비정부기구(NGO)가 힘을 합쳐 다수 민의를 관철시켜 승리를 거둔 쾌거가 맞습니다.
특별법 발의 후 지역 설명회 때 참석 600여명의 주민들에게 우리 납세자연맹이 만든 동영상을 틀어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치인들도 유권자들과 같이 해서 성공했을 때 정치적으로 굉장히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의원
국회와 국회의원, 시민들과 납세자연맹이 뭐랄까, 정말 깔끔하게 호흡을 맞춰 소통했고, 진짜 깔끔하게 협력과 공조를 해서 이뤄낸 보기 드문 성공사례였다고 봅니다.
정치인이 지지를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죠. 유명한 스타가 돼서 받는 방법도 있고 텔레비전에 자주 나가서 받는 방법도 있고, 마을에 길 닦아줘서 지지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어려운 것을 입법해내고 그 과정에 국민들과 함께 하면서 지지를 받는 것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 골(goal)이 훨씬 값지죠.
김회장
학교용지부담금 환급특별법 이후로도 그런 골 몇 골 더 넣으셨겠지요?
최의원
2013년 환급특별법과 일맥상통한 ‘친일 재산 환수법’과 소위 ‘전두환 법(고위공직자 재산환수 특별법)’도 제가 대표로 발의했습니다. 검찰이 아무리 해도 당시 법으로는 안 되는 거였죠. 국회의 특별법 제정 권리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특별법 제정 때 위헌논쟁, 과잉금지 이런 법리논쟁이 항상 뒤따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국민여론입니다. 그것을 담아 실정법에 반영시키는 게 국회입니다. 사실 ‘친일재산 환수법’은 법리충돌이 굉장했던 사례입니다.
김회장
납세자들 앞에는 너무 큰 장벽들이 많습니다. 힘센 국세청이 언론도 좌지우지 합니다. 세금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대다수인데, 어찌 민주화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불합리한 세법 개정, 국세청 개혁, 이런 부분에 의원님의 관심을 더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최의원
아마도 강한 권력기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 중에 한 명일 것입니다. 국세청이 장난을 치건 뭘 하건.
정부의 어설픈 증세론자들, 그 핵심을 못 짚는 언론들도 문제입니다. 노동자 세금 늘어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을 두고 보편적 증세문제와 결부지어 비판만 해대는 사람들이 많죠.
세금을 내서 가처분소득이 줄어나는 사회 설계를 하면 됩니다. 그래서 다른 비용을 사회적 장치로 줄여주면 되거든요. 그러면 증세가 서민들이나 샐러리맨들한테 훨씬 더 좋죠. 그래서 부자도 좀 내고 또 같이 호응해서 내면 결국은 가계지출이나 사회적 지출들이 줄어든 혜택이 거의 서민, 중산층에 가니까 그거는 해볼 만 한 겁니다. 그런데 교묘하게 한쪽은 놔두고 증세를 시도하면 가처분 소득이 줄고, 아주 잘못됩니다. 보편적 증세론자들이 잘못된 게 그것입니다. 가처분소득은 계속 줄고 있는데, 증세해서 뭐해서 그거는 부자세금을 뺏지 않으면 성립이 안 되는 논거에요.
김회장
민주주의라는 것이 입법, 사법, 행정, 언론, 비정부기구(NGO)까지, 각자 또는 서로 맞물려 잘 돌아가야 됩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최의원
한국의 지식인들이 정치 불신과 위기의 본질을 잘못 진단한 것 같아요. 사람 바꾸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야가 안 싸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국회는 국민들이 위임한 입법권력입니다. 국회의원은 독립된 헌법기관이고, 이들에게 국민이 권한을 위임했단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위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국민들이 진화를 했어요. 정보와 지식 격차가 없고 누구든 관심을 갖고 집중하면 현직 전문가들 못지않은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과거에 국민들이 위임한 대의체계, 과도한 위임에 대해 인정을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파격적 도입이 정당과 국회가 살 길이라고 봅니다. 위임한 권력을 갖고 하니까, 대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사멸해가고 있는 겁니다. 위임이 필요 없어졌는데 위임받은 자들은 기득권을 반납하지 않죠.
우리시대에 가장 존경받는 사람으로만 국회의원 만들어도 절대 불신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대의권력을 직접민주주의적 형태로 재구조화시키지 않으면 정말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입니다.
3선의 최의원은 관록에 걸맞게 한국 정치의 본원적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라는 정치적 틀이 엄청난 속도로 진화한 다수 민중의 생산력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취지의 말에 함께 자리한 사람들 모두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의 150만 명에 이르는 납세자연맹 회원들은 최의원이 가진 통찰의 증거다. 강한 행동력과 예리한 집단지성으로 납세자의 재산권과 인권을 한 결씩 쌓아온 5000만 납세자의 전위부대.
여기에 최의원과 같이 구체적인 사회정의를 위해 현장에서 발로 뛰며 보람을 느끼는 알짜 정치인이 한 명 두 명씩 계속 늘어난다면, 한국에 왜 희망이 없겠는가.
대담 = 김선택 회장
인터뷰 정리=이상현 운영위원(sustainers@facebook.com)
녹취 사진 = 임무혁 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