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볼라겟’은 스웨덴에서 국가가 독과점적으로 주류를 판매하는 매장이다. 말 그대로 시스템(System), 회사(bolaget, 스웨덴어로 볼라겟은 정관사의 의미가 단어 끝에 붙은 ‘그’ 회사라는 뜻)이다. 스웨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장이다. 주로 식료품을 파는 수퍼마켓 옆이나 쇼핑 몰 안에 자리잡고 있다.
▲시스템볼라겟 주류 판매장
언뜻 술과 관련 없는 이름 같지만 사실 이 명칭은 술의 역사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술에 대한 이야기는 500년 전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지만, 국가가 본격적으로 술에 대해 독점적인 관리를 시작한 것은 불과 1세기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이자 실용주의 정신에 기반을 둔 선진국 이미지의 스웨덴은 100여년전만 해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술 취한 소작농들이 술병으로 넘쳐나는 시골마을을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고 돈을 탕진하는 바람에 그 부인들이 나라에 ‘술 판매를 금지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기야 국가가 국민의 음주 생활에 까지 관여하게 되었다. 1917년도부터 ‘브랫시스템’이라는 알코올 배급제를 도입하여 엄격하게 알코올 소비를 통제했다. 이 제도에 따라 스웨덴 국민은 술을 마시려면 배급 통장에 따라 일정량을 할당받아 구입 시 도장을 받았다. 예컨대 한달 평균 2리터 이상 술을 구입할 수 없었고, 성별, 결혼 유무에 따라 구입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이 달랐다. 또, 여성은 결혼을 하게 되면, 가족 배급량으로 귀속되어 본인의 구입할당량을 상실하게 되는데 결국 남편이 대신 가족 단위의 술을 구입하여 가족과 함께 술을 마셔야 했다.
이같은 철저한 국가 주도의 ‘브랫시스템’은 1955년 현대 버전인 ‘시스템 볼라겟’이 세워질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시스템볼라겟이 스웨덴의 주류 판매를 지금까지 독점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철저하고 조직적인 관리 덕분에 스웨덴은 당시 북유럽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술을 금지하지 않는 국가였다. 국민들의 알코올 중독에 대한 해결책으로 알코올 ‘금지’가 아닌 조직적인 ‘관리’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시스템볼라겟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술을 판매한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주류 산업이 무시할 수 없는 세수의 원천이기 때문에 스웨덴에서도 역시 기호품인 술에 대해 매우 세부적으로 세금을 매기고 있다.
주류의 관리는 주류판매장이 하지만, 세금을 부과하고 거두는 것은 스웨덴 국세청이다. 세금의 나라 스웨덴 답게 이곳에서 구입하는 술 한 병마다 꼼꼼하고 세밀하게 세금이 책정되어 있다.
하지만 식료품을 판매하는 수퍼마켓 음료코너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알코올 농도 3.5% 이하의 주류는 예외이다. 이 기준치를 넘어서는 술은 모두 주류 판매장 안에서만 구입 가능하다.
▲스톡홀름 시내 주류 판매장 모습
최근 우리나라도 술에 대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세제개편을 한 바 있는데 스웨덴에서는 일찌감치 종량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종량세는 주류의 양이나 주류에 함유된 알코올 분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스웨덴 국세청의 홈페이지에는 알코올 함유량과 술의 종류에 따라 주세가 계산되는 방식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수퍼마켓 음료 코너에서 판매하는 알코올 함유량(volymprocent) 2.8%의 맥주에 대해서는 리터당 주류 세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말한 주류판매장에서 판매하는 술에 대해서는 맥주의 경우 리터(liter)당 2.02크로나(skattesats, 약 254원)를 일괄적으로 곱한 값의 주세가 붙는다.
만약 알코올 농도가 3.8%인 맥주 1리터의 경우에는 3.8% × 2리터 × 2.02크로나 = 15.35크로나(약 1,930원) 정도의 주세가 산출된다.
이 밖에도 와인이나 기타 주류에 대한 계산법은 다시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알코올 농도 2.25%까지는 면세이지만, 2,25%를 초과하는 와인에 대해서는 알코올 농도 구간별로 다른 세금이 매겨진다. 와인을 비롯한 기타 술들은 알코올 농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주세 계산식에서 알코올 함유량은 생략한다. 알코올 농도 15%의 칠레 와인을 구입했다고 가정하면 여기에 해당하는 구간의 주세는 리터당 26.18크로나이다.
따라서 1리터 × 26.18크로나 = 26.18 크로나. 즉, 와인 1병에 포함된 주세는 26.18크로나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술의 종류와 알코올 함유량에 따라 주세 계산식은 상이하다. 물론 이러한 주세 외에도 최종 소비자에게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25%가 있다.
국가 주도의 주류판매장이나 모든 술에 붙는 세금에 대해 스웨덴 국민들 모두가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술을 싸게 사기 위한 스웨덴 애주가들의 노력은 이미 유명하다. 주세가 스웨덴보다 저렴한 노르웨이로 원정을 가거나 발트해를 접하고 있는 동유럽 국가로 크루즈 여행을 가서 배에 갖가지 술을 대량으로 싣고 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사람들은 과거 역사를 보면 현재와 같은 시스템을 대체할 만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 스웨덴 KTA국제납세자권리연구소